바다 밑에도 초원이 있다. 파도가 잔잔한 연안의 모래바닥을 초록빛으로 뒤덮은 잘피림(seagrass meadow)이 바로 그것이다. 육상의 풀밭처럼 보이지만 잘피는 해조류가 아니라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엄연한 바다의 속씨식물이다.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초록 지대가 사실은 연안 생태계를 떠받치는 조용한 기둥이다.
작지만 강력한 탄소 저장고
잘피림은 지구 전체 바다 면적의 0.1%에 불과하지만, 해양이 흡수하는 탄소의 상당 부분을 붙잡아 둔다. 잘피는 광합성으로 흡수한 탄소를 뿌리와 해저 퇴적물에 차곡차곡 쌓는데, 이렇게 갇힌 탄소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 대기로 돌아가지 않는다. 열대우림보다 단위 면적당 탄소를 더 빠르게 격리한다는 연구도 있어, 잘피림은 맹그로브·염습지와 함께 대표적인 블루카본(blue carbon) 생태계로 꼽힌다.
수많은 생명의 요람
잘피 잎사귀 사이는 어린 물고기와 게, 새우가 몸을 숨기는 은신처이자 먹이터다. 사진 속 바다거북처럼 잘피를 직접 뜯어 먹는 초식 동물도 있고, 잘피가 걸러 낸 맑은 물 덕분에 산호와 조개가 함께 번성한다. 잘피림이 사라지면 이 먹이사슬 전체가 흔들린다.
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
연안 개발, 수질 오염, 선박 닻에 긁히는 훼손으로 잘피림은 해마다 줄고 있다. 다행히 오염원을 줄이고 훼손된 바닥에 잘피를 다시 심는 복원 사업이 여러 나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. 바다를 지키는 일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, 우리가 버리는 것과 지키는 것 사이의 선택에서 시작된다.
이미지: P.Lindgren, “Green Sea Turtle grazing seagrass” (Akumal bay, Mexico), Wikimedia Commons, CC BY-SA 3.0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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